라캉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[세 개의 세계]를 거친다고 보았다.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[아기]는 감각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기에 [자신의 몸]이 [파편화]되어 있다고 인식한다. 그런데 [거울 안]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[완전]하게 보인다. 아이는 불완전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신체가 완전해 보이는 거울의 이미지와 [동일]해지기를 [추구]하면서도 그 둘 사이의 [괴리]에서 [불안]을 느끼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[자아]를 형성하게 된다. 그런데 [라캉]은 이 [자아]가 [거짓된 이미지]에 불과하며 거기서 [불안감]이 비롯된다고 보았다. 어쨌든 첫 번째 세계인 [상상계]는 [거울 단계]의 아이가 가지는 [이미지의 세계]이다.
이후 아이는 [언어와 규범]이 지배하는 현실 세계, [상징계]로 들어선다. [언어]를 배우면서 아이는 [사회적 질서] 속에 완전히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. 그러데 이 언어 때문에 [결핍]이 발생한다. 아이는 목이 마르다고 운다. 목이 마른 생물학적 본능은 [욕구]이고 목이 마르다고 [말]을 해 물을 얻는 것은 [요구]이다. 그런데 엄마에게 물을 받아먹고 [욕구]는 [해소]되었지만 아이는 또 찡찡거린다. 요구에서 충족된 욕구를 뺀 나머지가 있었던 것이다. 그것이 바로 [욕망]이다. 아이는 물을 먹고도 엄마가 곁에 머물면서 무한 사랑 주기를 바란다. 하지만 [언어에의 한 요구]는 [실패]하게 되고 [결핍]과 그것에 의한 [불안]이 생기게 된다. 이렇게 채워지지 않은 [욕망]은 권력, 부, 명예 등으로 [치환]되지만 어느 것도 [충족시킬 수는 없다.]
결핍을 만들어낸 상징계의 [언어]는 아이가 태어나기 [전에] 이미 세상에 [존재]했다. 그리고 언어보다 늦게 세상에 나온 [아이]는 [언어의 질서]에 [복종] 해야 한다. 결국 우리의 [욕망]은 [언어에 종속]되어 언어 공동체 내에 형성된 [무의식]이 우리의 [욕망]에 [작용]하게 되는 것이다. 미리 존재하는 [언어의 질서], 즉 [상징적 질서]가 [대타자]가 되어 [현실을 지배]하고 인간은 [대타자의 욕망]을 [욕망]하게 되는 것이다.
마지막으로 상상계와 상징계를 초월한 [실재계]가 있다. 라캉은 이 실재계에 속하는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 [욕망]의 [올바른 방향]이라고 한다. [기존의 법칙]을 [거부]하고 [새로운 방식]으로 작품을 만드는 [예술가]가 그 예이다. 그들은 현실의 쾌락을 넘어서는 [다른 차원의 쾌락]인 [주이상스]를 추구하고 만들어내는 원동력인 [생톰]을 가지고 있다고 라캉은 설명한다. [생톰]은 결국 주체가 상징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.
우리는 자신이 자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. 하지만 [라캉]에 의하면 우리는 [타자가 지배하는 상징계의 질서]에서 [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] 상태이다. 라캉은 우리가 실재계에 들어가 자신의 실존을 실현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.
상상계 : 아이가 태어나 거울을 보고 자신을 확인(거울 단계)하며 파편화되어 있는 자신을 거울 속 완전한 자신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려는 세계. 여기서 아이는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.
상징계 : 엄마와 2자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던 아이에게 아버지가 등장하여 범과 규칙의 세계에 들어오라 강요하여 아이가 들어서는 법과 규칙의 세계. 이미지의 상상계에서 언어의 상징계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. 상징계에서 아이는 질서 속에서 위치를 부여받고 주체가 형성되지만 이미 존재했던 언어에 지배당하게 된다.
실재계 : 이미지의 상상계와 언어의 상징계를 초월한 세계. 예술가들이 기존의 규칙을 깨고 만들어내는 세계가 사례일 수 있다. 라캉은 이 세계를 이상적인 세계라고 주장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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